로그/풍요와 쇄락의 땅

чи бол миний ач охин

—-. 2021. 7. 24. 14:28

너는 나의 손녀


하루종일 추위에 떨다 밤이 되서야 게르를 치고 국수를 먹거나, 우유로 만든 술을 데워 마시듯이 마음을 감싸는 포근함 감각이 있다. 테르비쉬는 다쉬티의 웃음 소리를 들으면 국수를 먹거나 술을 마실 때와 똑같은 포근함을 느꼈다.

언제고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라고 은연 중에 생각했던 것 같다. 요즘은 보고 싶은 것도 마땅히 없고, 듣고 싶은 것도 마땅히 없다. 꽤 오래 살았으니 이 정도면 다 살았지. 안개 낀 밤에 별을 볼 때면 그런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밤에 오색빛으로 별이 한가득 빛나 숨을 압도하는 하늘이나, 그를 통째로 집어삼킬 듯이 바람 소리를 내는 숲을 보면 그 아름다움에 동참하고 싶다는, 하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기에.

그러나 그는 여기에 있다. 다쉬티라는 피가 이어지지 않은 손녀와 함께. 말도 없이 손녀 앞에서 사라지면 안 되지. 그래서야 좋은 할머니 실격이다. 그가 해야 할 일은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생명을 꺼트리는 것이 아니다. 그래, 이런 걸 책임감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가족애인가. 혹은, 둘 다인가.

그가 해야 할 일은 다쉬티와 손을 잡고 하는 산책이다. 그리고 때때로 이 손녀가 불러주는 노래에 귀 기울일 것이다. 가을에는 또 게르를 칠 자리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이다.

죽음, 그런 이야기를 하면 다쉬티가 속상해할까? 하지만 언제까지고 숨길 수도 없지. 언젠가는, 그래. 이런 다쉬티, 이 할멈은 아마 겁이 나는 모양이다. 네가 상처받거나, 슬퍼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겁이 나. 그러니 내가 좀 더 용기가 생기면, 그 땐 내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꾸나. 영원히 피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지? 그런 생각을 하며 손톱으로 상처를 내지 않도록 주의하며 다쉬티의 머리를 장난스럽게 마사지하듯 손끝으로 긁적거린다.

“마, 내가 어떻게 모르겠나. 이렇게 맨날 들러붙고 앵기는데, 떼잉. 둘이서만 논다고 양들이 비웃어도 모른다.”
하고 좋으면서도, 일부러 또 이상한 소리를 하며 웃는다.

“나도 네가 좋으면 좋다. 네가 슬프면 나도 슬플기다.”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처음 이 아이를 봤을 때는 그런 고민을 많이 했다.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좋은 보호자가 될 수 있을까. 그건 이제 고민할 필요가 없구나, 다쉬티. 이렇게 행복해 보이니까 말이다.

'로그 > 풍요와 쇄락의 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람에 구름 밀리듯  (0) 2021.07.25
산책  (0) 2021.07.25
휠라흘  (0) 2021.07.24
조심하게, 바람에 날아가겠어  (0) 2021.07.12
쟈르칼 테르비쉬/노년  (0) 2021.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