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홍유산전설

향갑

—-. 2025. 5. 12.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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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지칭 용어는 특정 성별을 의도하지 않았으며, 들판의 나린 별과 그의 배우자의 성별은 따로 정한 바가 없습니다.

 


“좋아해요.”
알고 있어.
“보통 그렇게 대답 안 하는데.”
원하는 대답이 있구나, 몬호르의 딸 소욘?
“그럼요.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걸 말해줘요.”
들판에 나린 별은 곱슬거리는 몬호르 소욘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긴 머리카락을 매만지다가, 그 끝에 입을 맞추었다. 이걸로 대답이 됐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나린별이 소욘의 창공을 닮은 쪽빛 눈을 바라보면, 몬호르 소욘은 나린별의 별빛으로 빚어낸 씨앗을 나린별의 입 안에 넣어주었다. 나린별은 깜짝 놀라 소욘의 어깨를 살짝 밀어내다가, 이내 소욘의 목을 두 팔로 끌어안았다. 소리 없는 웃음, 그리고 장신구가 서로 부딪히며 짤랑이는 소리. 소욘에게서는 나무 냄새가 났다.

나린별은 오래 된 기억 속에서 소욘의 향기를 향갑*에 넣어 뚜껑을 닫았다. 그 향갑의 걸쇠를 알라그가 검지 손가락 끝으로 건드렸다. 그것은 폭력적이지도 않았고, 강제적이지도 않았다. 그저 작은 호기심. 그러나 7년간 마주하지 않은 감정을 갑작스레 떠올리는 것은 나린별에게 있어 유성우를 맞이하는 것 처럼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답고, 벅찬 일이었다. 그것을 알라그가 예상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할 만큼.

소욘. 네가 내 곁에 있으면 좋겠어.
소욘. 내가 네 곁에 있으면 좋겠어.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돼. 속에 감춰둔 감정을 내비쳐서는 안 돼.
내가 약해지면 우리 부족 전체가 불안과 혼돈에 빠진다.
누안타는 내 어깨 위에 있어. 나는 누안타야.
하지만 나도 사람이야. 나도 개인이야. 나도… 말을 할 필요가 있어.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야.

들판에 나린 별은 흉터 가득한 손으로 알라그의 손을 꼭 잡았다.


*향갑香匣: 향을 담는 작은 용기나 향꽂이 장식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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