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지칭 용어는 특정 성별을 의도하지 않았으며, 들판의 나린 별과 그의 자녀들은 성별은 따로 정한 바가 없습니다.
“족장님.”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으면 들판에 나린별은 고삐를 살짝 당긴다. 훈련이 잘 된 말은 나린별의 신호를 알아듣고 속도를 점점 낮추며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아 목소리의 방향으로 향했다. 가벼운 동작으로 말에서 내린 나린별은 부드럽게 웃었다. 자신의 배우자 소욘의 이름을 물려 받은, 소욘의 자취, 소욘의 아이. 그리고 내 아이. 누안타 소욘 첵체크가 자신의 아이 누안타 첵체크 사이칸의 손을 잡고 차분한 얼굴로 나린별을 올려다보았다.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고 왜 족장님이라고 불러? 나린별이 수어로 물으면 첵체크는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가 족장님이고, 족장님이 곧 어머니인데요.”
나린별은 마음대로 하라는 듯 어깨를 으쓱, 움직였다. 사이칸은 할머니가 반갑다고 나린별의 허리를 폭 안았다. 나린별은 손바닥을 움직여 사이칸의 머리에 댔다가 쭈욱 올렸다. 사이칸, 키가 쑥쑥 크네. 나린별의 동작을 알아 듣고 첵체크가 말했다.
“그쵸? 하루하루가 다르게 크는 것 같아요.”
나린별에게는 5명의 자녀가 있다. 그 중 첵체크를 제외한 모든 아이들은 혼인하여 출가하였다. 해마다 나린별을 보러 와주지만, 첵체크처럼 자주 보지 못하는 것은 아쉽다. 다행히 첵체크도 그런 마음을 아는지, 본디 다른 사람에들에게 쉽게 정을 주거나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나 나린별에게만큼은 살갑게 대했다.
나린별과 첵체크는 나린별의 게르로 들어갔다. 사이칸은 어른들끼리의 이야기임을 눈치채고 민첩하게 나린별의 개들과 함께 들판으로 나갔다. 시간도 보내고 효도 할 겸 양을 보러 간 것이다.
몇 가지 일상적인 대화가 오갔다. 나린별과 첵체크는 수테차를 끓이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린별은 열심히 손짓했고, 첵체크는 열심히 말을 했다. 결론은 결국 오늘도 ‘그래서 언제 후계자를 정하실 건가요’로 도달했다.
조만간. 나린별이 말하면 첵체크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럴 땐 눈매가 꼭 나린별을 닮았다.
“그만 미루세요. 다른 건 다 딱.딱. 미리미리 잘 하면서 후계자 뽑는 건 나이 육십이 다 돼서 아직도 안 했어요?”
나린별은 말 없이 미소 지었다. 나린별이 말을 하지 않아도 친자식의 힘으로 알아 들은 첵체크는 알아 듣고 바로 반응했다.
“신중한 것도 좋지만 나 같이 ‘분명한’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고요. 우리 기다리고 있어요, 그거 말하려고 온 거에요.”
알았어, 알았어. 나린별은 손가락 4개를 펼쳐 보인다. 4명의 후보가 있다는 말. 아마 그 중에서 정해질 거야.
“진짜죠? 아무래도 진짜겠죠, 어머니가 거짓말 하는 건 나도 본 적이 없으니까.”
나린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한 이야기를 마친 첵체크는 배우자 얘기, 막내가 활을 어떻게 쏜다, 새로 구한 빵 재료가 기가 막히게 맛있으니까 어머니한테도 좀 가져다 드리겠다.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풀었다. 한바탕 말을 타고 초원을 한 바퀴 돈 사이칸이 머리카락에 풀 몇 가닥을 붙이고 들어와 자기도 수테차 한 잔 달라고 게르로 들어왔다.
“할머니, 그냥 나 족장 시켜줘요.”
수테차를 마시며 사이칸이 장난으로 말하면 첵체크가 맙소사. 라고 중얼거리며 사이칸을 바라보았다.
“너 다 들었니?”
“안 훔쳐들었어요, 그냥 요즘 엄마가 신경 쓰는 게 그거니까 그 얘기 했겠거니 싶은 거지!”
“자기 자식한테 족장직 물러주면 비리 소리 나올건데 감당 할 수 있겠어?”
“아 농담이었어요 농담 엄마!”